다이어트 중간 기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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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두형 작성일 23-03-10 09:50 조회 12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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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대한민국의 남성이 으레 그렇듯, 나 또한 징병검사를 받았다.
 
오후 수업을 모조리 빠지고, 신분증과 필요 서류만 챙긴 채 검사장으로 이동했다. 간단히 사진을 찍고 설문조사와 지능 검사를 받았다. 곧이어 옷을 갈아입은 다음, 피를 뽑고 키와 체중을 재고 시력과 청력 검사를 했다. 전체 과정을 다 합쳐 아마 두 시간 정도 걸렸던 걸로 기억한다. 그만큼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인생에 있어 그만큼 중요했던 두 시간은 고등학교와 대학 입학시험 정도를 빼면 없지 싶다.
 
'4급'
 
두 시간여에 걸친 징병검사 후에 내가 받은 결과였다. 사유는 체질량지수(BMI) 기준 초과. 쉽게 말해 비만이었다. 그것도 고도비만.
 
4급을 받아서 현역으로 군대를 갈 필요가 없어졌다는 사실은 누군가에겐 부러움을 살 수도 있었겠으나 내겐 그렇지 않았다. 본래 나는 대학원에 진학한 후 전문연구요원으로 군 생활을 보낼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현역에 갈 일이 없었다. 결국 내가 4급에서 읽은 내용은 '너는 대한민국 남자 대부분이 가는 군대에 건강상의 이유로 못 갈 정도로 살이 쪘음 ㅇㅇ' 였다. 국가 공인 뚱보가 된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 된 기억은 4살 남짓했던 때의 기억이다. 그 다음으로 오래 된 기억은 7살, 유치원을 다닐 때의 기억인데, 그 시점에서 이미 나는 '통통'했다. 그 이후 대학생이 될 때까지 난 살을 빼지 않았다. 즉, 내가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기억에서 나는 단 한 시점을 제외하고 항상 비만이었다.
 
유치원 때의 '통통'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점차 '뚱뚱', '뒤룩뒤룩'으로 바뀌어 갔다. 초등학교 졸업 앨범의 내 모습은 지금 보면 꽤 귀여운 모습이다. 체중상으론 과체중이었지만 겉으로 티가 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중학교 졸업 앨범의 사진은 누가 봐도 뚱뚱해 보이는 모습이었고, 고등학교, 나아가 대학교 때의 사진은 결코 꺼내보고 싶지 않은 수준이 되었다.
 
당연히 '살을 빼자'라고 생각했던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으레 작심삼일로 끝나곤 했다. 아니, 작심 반나절도 못간 적이 태반이다.
 
아니, 그렇다기보단 어릴 때의 나는 살을 언젠가는 빼야 한다고만 어렴풋이 생각했지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살을 빼자! 하고 달려들었던 적이 없다. 다시 말해 나는 다이어트에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애초에 시도해본 적이 없으니까. 그냥 언젠가는 빠지겠지, 하면서 살에 대해선 무관심으로 일관했다는 게 정확한 묘사일 것 같다.
 
이건 어떻게 보면 다행이기도 했다. 괜히 그 나이에 다이어트 한답시고 정확하지도 않은 지식으로 원푸드니 굶기니 하는 엉터리 다이어트를 시도했었다면 내 몸은 훨씬 망가져 있었을 테니까.
 
그리고 정말로 고맙게도, 나는 다른 비만인들에 비해 고충을 그다지 많이 받지 않았다. 특히 뚱뚱하단 이유로 사람에게 상처를 받은 일은 단 하나도 없었다. 물론 아주 없진 않았겠지만, 적어도 뚱뚱하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받은 기억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 걸 보니 '없었다'고 표현해도 괜찮을 것 같다. 일단 성격 자체가 내향성이 강해 바깥 생활에서 멸시의 시선을 받을 일이 잘 없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좋은 사람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의 친구들, 고등학교 때의 친구들, 대학생 때의 친구들, 선배들, 후배들, 그리고 친척과 가족들 그 누구도 내가 살이 쪘다는 이유만으로 날 싫어하거나 놀리거나 상처주지 않았다. 대부분 내 신체에 대한 이야기는 아예 하지 않았고, 설령 비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해도 '듬직하다'같이 순화해서 표현해 주는 게 보통이었다. 혹은 친구나 가족으로서 충분히 건넬 수 있는, 받는 입장에서 전혀 기분이 상하지 않는 진심어린 충고를 해 주거나. 이건 정말로 감사한 일임을 잘 안다. 이 자리를 빌어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때문에 나는 4급을 받을 정도로 고도비만이었음에도 자존감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이게 다이어트 과정에서 굉장한 힘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동시에 나는 살을 뺄 강한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아, 이건 몹시 중요하므로 꼭 언급하고 넘어가야겠다. 절대로 이걸 '주변 사람들이 가혹하게 말하지 않아서 살을 빼려고 하지 않은 거네'라고 이해하지 말길 바란다. 만약 주변 사람들이 내게 뚱뚱하단 이유로 곧잘 상처를 줬다 해도 난 역시 다이어트를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자존감만 바닥이 난 채 정신마저 크게 병들었을 것이다. 이건 장담할 수 있다. 절대로 주변 비만인들에게 비만을 이유로 인신 공격을 하지 말라. 특히 그 비만인이 살을 빼길 원한다면 더더욱.
 
정말 중요하니까 두 번 말한다. 주변 사람 중 비만인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살을 빼길 원한다면 차라리 격려를 해 줘라. 헬스장 비용을 대주는 것도 괜찮다. 운동기구를 사 주거나, 같이 운동을 하는 것도 좋은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절대, 절대 '그러니까 살이 안 빠지지', '살 찔 만 하네', '살이나 먼저 빼시지'같은 표현은 하면 안 된다. 그따위 말을 해 놓고 '난 그 사람을 위한 거야. 일부러 충격을 줘야 살을 빼지'같은 비열한 변명은 결코 하지 말기를. 그건 상대방의 약점을 공격해서 (상대만큼 뚱뚱하지 않은)나의 위안을 얻는 몹시 저질적인 행동일 뿐더러, 정작 그 말을 들은 상대는 상처만 입고 살을 빼자는 의욕은 몹시 떨어질 테니까.
 
잠시 이야기가 샜다. 물론 그만큼 중요한 내용이므로 꼭 명심하길 바란다. 아무튼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오면, 난 고등학생 때까지는 비록 살은 많이 쪘지만 그 때문에 문제가 생길 정도는 아니었다. 때문에 작정하고 다이어트를 시도하지 않았다. 다이어트는 잠깐 하고 끝낼 게 아니라 평생을 해 나갈 과정인데 그걸 시작할 의욕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고 나서부터는 조금씩 신체에 무리가 가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2학년이 되자 조금만 걸어도 관절이 아팠다. 혈압도 어느새 140/100을 넘겼다. 10초라도 달렸다 치면 몇 분을 헥헥거렸고, 심지어 샤워를 할 때에도 구석구석 씻는 것이 힘들어 남보다 배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그 외에도 수많은 불편이 생겨나거나, 혹은 자각했다.
 
건강도 건강이었지만 어느샌가 살찌지 않은 내 모습이 궁금해졌다. 앞서 말했듯 내가 기억하는 내 모습은 인생 최초의 기억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살찐 모습이다. 때문에 난 살 빠진 내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호기심이 동했다. 살 빠진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럼 살을 빼면 되지 않겠는가?
 
그 때부터 서서히 아, 이젠 진짜로 마음먹고 살을 한 번 빼봐야겠다, 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게 2015년 초 쯤 되어서다. 다만 전공 공부가 바쁘기도 했고, 또 집안에 좀 많이 나쁜 일이 생겨 다이어트를 곧바로 시작하진 못했다. 그렇지만 '살을 빼야겠다'라는 의욕만큼은 점차 쌓이고 있었다.
 
그 때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이 징병검사에서 받은 4급이란 결과였다. 4급은 물론 그 자체로도 충격적인 일이었지만, 무엇보다 매우 좋은 트리거였다. 비유하자면 잘 마른 자작더미에 던져진 성냥이었고, 장전된 총의 당겨진 방아쇠였다. 다시 말해 4급을 받은 것은 결정적이긴 했어도 그게 다이어트 시작 계기의 전부는 아니었다. 성냥을 물에 던지거나 빈 총의 방아쇠를 당겨도 그다지 특별한 일은 벌어지지 않는 것처럼.
 
약 1년간의 시간에 걸쳐 살을 빼야겠다는 결심이 굳게 선 내게 '4급 판정'은 엄청난 기회이자 계기였다. 4급을 받고 사회복무요원 생활을 시작하면 2년이 넘는 휴학 명분을 챙길 수 있다. 동시에 공익 생활을 하면서 남는 어마어마한 개인시간을 살 빼기에 투자할 수 있기도 했다. 무엇보다 '너 지금 군대 못 갈 정도로 살 쪄 있음'하는 내용이 신호탄 역할을 했음은 덤이다.
 
그렇게 곧바로 2015년 12월부터, 난 내 인생에서 최초로 다이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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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비만을 이유로 상처받은 기억이 거의 없다는 것과 더불어, 또 다른 기막힌 행운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바로 과학도라는 것이다. 대학에서는 물리학을 전공하고 있지만 과학 전반을 좋아하고(아, 다시 생각해보니 화학은 좀 아닌 것 같다) 또 모교 특성상 모든 과학을 골고루 공부했었다. 때문에 난 다이어트에 필요한 최소한의 과학적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예를 들어,

○ 질량-에너지 보존 법칙에 따라, 내 몸은 먹은 만큼 찌고 에너지를 쓴 만큼 빠진다. '신체'라는 계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없던 에너지가 생기거나, 혹은 아무 것도 안 했는데 에너지가 자동으로 감소하는 일은 없다. 적게 먹고 많이 운동했는데도 살이 안 빠지는 건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하다(물론, 유전적인 이유로 조금만 먹어도 엄청 살찌고, 또 운동을 아무리 해도 그만큼 기초 대사량이 낮아져 살이 안 빠지는 체질도 있는 등 예외는 있긴 하다. 어디까지나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 물리학을 이용하면 내가 운동했을 때 소모하는 칼로리를 대충 계산할 수 있다. 계산해 보면, 생각보다 운동 자체로 소모되는 칼로리는 적다. 80키로의 사람이 20층까지 계단을 올라도 소모되는 에너지는 기껏해야 10칼로리 남짓, 신체의 효율을 40%로 계산해도 겨우 25칼로리 정도다. 이를 보듯 에너지 소비량을 늘리기는 어렵다. 그러면 중점적으로 신경써야 하는 것은 섭취량 쪽이라는 결론이 얻어진다.

○ 하지만 무작정 섭취량을 줄이는게 능사가 아니다. 신체는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 요구량이 있다. 흔히 기초대사량이라 부르는 그 기준점보다 더 적은 에너지를 섭취하면, 신체는 비상 사태라고 인지한다. 우리의 신체는 수많은 진화를 거쳐서 생존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 딱 좋은 전략을 잘 알고 있다. 바로 쓸데없이 에너지를 소모하는 근육을 버리고, 모든 섭취 에너지를 지방으로 저장하는 것이다. 즉, 점점 살이 찌기 쉬운 상태가 된다. 칼로리만 무작정 줄인 식단에서 얻어지는 영양불균형은 덤이다.

○ 운동도 소홀히 하면 안된다. 운동 자체로 소모되는 에너지는 그렇게까지 많진 않지만(물론 쌓이면 이것도 엄청난 양이 되지만 그건 차치하고서라도) 근육이 늘어나면 기본적으로 대사량, 특히 활동 대사량이 늘어난다. 따라서 운동의 효율이 점점 좋아진다. 그리고 근육은 지방보다 밀도가 크기에 같은 체중이라도 좀 더 날씬해진다.

○ 다이어트 시 신체에 무리를 주지 않는 한계는 아무리 많아도 한 달에 2~3키로 감량하는 정도이다. 고도비만일 경우 초반에 일주일에 1~2키로가량 빠지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곧 한 달에 1~3키로 수준으로 줄어들게 된다. 반대로 근육을 키우는 것도 스테로이드 등을 사용하지 않는다 했을 때 최대로 잡아 봐야 2~3개월에 1키로 가량 늘리는 게 한계다.

등등, 보통 다이어트를 시작하기 전에 필수로 공부해야 할 다양한 이론들을 난 이미 알고 있었다. 때문에 원푸드 다이어트 같은 엉터리 다이어트에 하나도 현혹되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투자할 수 있는 노력을 올바른 방법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이점이었다.

또한 과학을 공부하면서 얻은 통찰력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몇 가지 다이어트 이론을 살펴본 결과, 다이어트의 본질은 살 빼기가 아니라 건강한 몸 만들기라는 것과 다이어트에서 가장 중요한 특성은 '꾸준함'임을 알아낼 수 있었다. 당장 몸무게가 확확 줄어들지 않는다고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는 없다. 지방을 빼려고 무리하게 식단 조절을 할 필요도 없다. 그게 다이어트의 본질이 아니니까. 또 다이어트 계획을 세울 때는 10년이고 20년이고 꾸준히 실천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꾸준함이 없는 다이어트는 그 어떤 방법이라도 파국을 맞이할 수 밖에 없으니까.

2015년 12월이 되고, 2학년 2학기가 끝났다. 방학을 하고 집으로 내려오자마자 곧바로 내가 가진 지혜를 총동원하여 다이어트 계획을 세웠다. 우선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었다.

당시 나는 거의 100키로에 가까운 몸무게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만 움직이는 것도 몹시 힘들었다. 또한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양껏 먹는 습관이 몸에 배여서, 기존 식사량에서 단 한 숟가락이라도 줄이면 정신이 배겨내지 못할 것 같았다. 사람의 습관은 바뀌기 힘들다. 운동이라곤 하나도 안하던 상황에서 '당장 내일 새벽부터 뛰어야지!'하고 결심한들,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령 첫 몇 주는 실천하더라도 조만간 더 큰 반작용이 오게 된다. 물론 그게 가능한 사람이 있긴 하겠지만, 난 그만큼 의지력이 강하진 않다는 걸 많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이때까지와는 다르게 내겐 이번엔 진심으로 살을 빼겠다, 하는 결심이 있었다는 점이다. 때문에 아주 작은 변화는 일으킬 수 있었다. 그것은 '하루에 윗몸일으키기 10개, 팔굽혀펴기 10개, 다리 들어올리기(레그 레이즈) 10개씩을 꼭 하자' 였다.

아, 미리 말하고 넘어가야 할 게 한 가지 있다. 만약 다이어트를 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했던 방법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결코 권하지 않는다. 내 루틴을 그대로 가져간다는 것은 마치 수학공부를 할 때 그저 공식만을 외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모든 사람은 처한 상황, 신체 조건, 성격적 특성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 경험에서 얻을 것은 얻고, 버릴 것은 버려 자신에 맞게 응용하는 것이 성공률을 훨씬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2015년 12월 하순부터 정말로 하루도 빠짐없이 윗몸일으키기 10개와 팔굽혀펴기 10개, 다리 들어올리기 10개를 하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이 또한 며칠 가지 않아 그만뒀을 테지만, 뭔가 일이 풀리기 시작하려는지 운동을 빼먹는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당시 나는 팔굽혀펴기 10개조차 두 번 나눠서 해야 했다. 그나마도 첫 날엔 십 분 정도 걸려 저 세 가지를 다 해냈지만, 둘째 날에는 격렬한 근육통에 시달려 팔굽혀펴기 10개를 10번에 걸쳐서 해야 했다. 그 때, 팔굽혀펴기를 하기 위해 팔을 굽히자마자 엄청난 격통과 함께 그대로 땅에 엎어져버린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꽤 충격이었다. 전날 고작 10번 했다고 오늘 하나도 안 되다니! 복근도 마찬가지였다. 어제는 분명 윗몸일으키기 10개를 무리 없이 해냈었는데 오늘은 두 개도 미처 못 하는 것이 아닌가. 단순히 아픈 게 아니라, 그냥 안 됐다. 근육에 힘 자체가 안 들어간다는 감각이었다. 내가 얼마나 운동 부족이었는지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세 가지 운동을 하루 열 번씩 하기 시작한지 3주 가량이 지났다. 계획을 세웠던 대로, 단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을 했다는 것은 분명 굉장한 일이었다. 하지만 운동량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내가 얻은 게 아예 아무것도 없었냐 하면 그건 아니다. 내가 세운 계획을 꾸준히 실천했다는 게 중요했다. 자신감이랄까? 뭔가 '나는 할 수 있다' 같은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지금 내가 하는 운동이 본격적으로 살을 빼는 운동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 내가 하는 것은 곧 시작할 본격적인 다이어트의 준비 운동임을 자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이 3주 가량 되는 기간은 본 궤도에 돌입하기 위한 신체적, 정신적 준비 운동이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한계 역시 뚜렸했다.

우선 절대적인 운동량이 너무나 모자랐다. 고작해야 윗몸일으키기, 다리 들어올리기, 팔굽혀펴기 세 종류에다가 1일 10회에 지나지 않는 지나치게 작은 운동 횟수. 뭐 아침마다 몇십 분씩 걷는다거나, 계단을 오르내린다거나 하는 건 일절 없었다. 게다가 난 당시 방학인데다 사회복무요원 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이었기 때문에 집 밖에 나가는 일도 자주 없어서 추가로 활동량이 생길 일조차 드물었다. 완벽한 운동 부족이었다.

두 번째로, 식단 조절이 전혀 안 되고 있었다. 당시 나의 식단을 설명하자면

-  아침 : 시리얼+우유, 국그릇 한 공기 가득
-  점심 : 라면1 봉지(때때로 2봉지) + 계란 + 우유 (+ 때때로 밥)
-  저녁 : 제육볶음이나 불고기 등의 고기요리를 주 반찬으로 한 밥
+  때때로 간식 및 야식

그렇다. 특별히 운동하지 않는다면 살이 찌기 굉장히 쉬운 식단이었다. 변명을 하자면, 저것도 사실 2015년의 일반적인 식사량에 비하면 꽤 절제가 된 편이었다. 식탐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테지만, 집에 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먹을 게 넘쳐난다면 자제하기가 힘들지 않는가? 나로선 저게 최선이었다.

세 번째로, 살을 빼기 위해 어떻게 운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감을 잡기가 힘들었다. 일단 어려서부터 누구나 배우는 맨몸운동을 시작하긴 했지만 그 외의 수많은 운동들에 대해 알아보기 힘들었다. 물론 각종 운동법이야 인터넷 검색만 하더라도 쏟아져 나오지만 영상 자료만으로 정확한 자세를 배우기엔 한계가 있었다. 난 운동을 해본적이 없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살을 빼고 싶다, 건강해지고 싶다 하는 의욕과 동기부여는 확실하게 된 상태다. 그리고 작은 목표를 하나 세워 그걸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다이어트를 시작하기에는 아직 노하우가 부족하다. 이럴 땐 전문가의 도움을 얻는 것이 좋은 해결책일 때가 있다. 이 경우엔 PT가 답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2016년 1월 중순, 내 다이어트는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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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간 정신적으로 준비 운동이 완전히 끝났다는 판단 아래, 이제 진지하게 다이어트를 시작하기 위해 PT를 받게 되었다. 부모님의 도움을 얻어, 집에서 걸어서 5분(중간에 신호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운이 나쁘면 8분) 정도 되는 거리에 있는 헬스장에 PT 등록을 했다. 헬스장은 3층에 위치해 있었다. 처음 PT등록을 하러 가던 날, 관장님이 권투선수 출신의 보디빌더라고 소개하는 광고지를 보면서 3층으로 올라가던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난 한번도 헬스장에 가본 적이 없어서, 헬스장이 과연 어떤 모습인지 궁금했다. 실제로 본 헬스장은, 뭐랄까, 딱 생각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수많은 러닝머신, 마찬가지로 수많은 자전거, 벽면 전체에 깔려 있는 거울들, 한 쪽에 가지런히 개어져 있는 수건과 옷들, 그리고 수십 개의 다양한 아령들과 바벨들, 또 이름 모를 수많은 운동기구들과 입구에 장식되어 있는 어마어마한 트로피들...

예상과 달랐던 것은 관장님의 모습이었다. 막연하게 한 삼십 대쯤 되는 사람이 트레이너겠거니,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처음 본 관장님은 그보단 조금 나이 드신 분이었다. 물론 크게 중요한 사항은 아니었다.

곧바로 PT상담에 들어갔다. 세세한 내용은 거의 다 까먹었지만, 왜 살을 빼려고 하나, 얼마나 오랬동안 운동할 수 있나, 지금 식단이 어떻게 되나 같은 질문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PT 진행방식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이어졌다. 얼마간의 조율 이후 날짜와 금액이 확정됐다. 다음 수업 전까지 식단을 짜서 보내줄 테니 그걸 최대한 지킬 것과, 헬스장에서 쓸 신발 한 켤레와 인바디 측정 결과를 들고와 달라는 안내를 받고 모든 등록과정이 끝났다.

등록을 끝낸 후 곧바로 인바디를 측정했다.

예상은 했지만, 인바디 결과는 처참했다. 지방을 32키로 가까이 감량해야 했다. 당시 인바디 측정을 도와주시던 분이 인바디를 왜 측정하냐고 물어보자 ""이제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하려는데, 그러려면 최초 기록이 필요해서요.""라고 답했었는데, 그 분께서 한참을 말없이 계시다가 ""운동 시작한다니 따로 말씀은 안 드려도 될 것 같네요.""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하루가 지나서 관장님으로부터 식단이 도착했다. 그 내용을 토씨 하나까지 그대로 올려보겠다.

기상      : 물 한잔 사과100g 1개 고구마100g 1개
세 시간 후 : 일반식사 잡곡밥150g 닭가슴살샐러드100g(양파 브로콜리 파프리카 소스) 나물종류
세 시간 후 : 고구마 한개 견과류 반홉 계란스크램불 저지방우유
세 시간 후 : 닭가슴살샐러드
식사는 싱겁게하고 하루 수분섭취 3리터!
좋아하는 기호식품은 일주일 한번만 먹기! 파이팅~~

당시까지만 해도 라면 두 개를 한 끼에 해치우던 일이 많았던 내겐 가혹하다고까지 표현할 만한 식단이었지만, 까짓것 이왕 시작한 이상 철저하게 해 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다음날부터 난 식단표를 철저히 지키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냉수 한 컵을 들이키고는, 사과 한 알을 깨끗이 씻은 다음 껍질 채 먹었다. 저울이 없었기에 고구마는 그냥 적당히 작은 놈 한두개를 골라 먹었다. 일어난 직후였기에 사실 그것도 꽤 먹기 힘들었다. 가장 식욕이 없을 때였으니까.

밥은 평소에도 잡곡을 먹었기에 특별히 변화를 줄 필요는 없었다. 150g은 그냥 평소 먹는 양에서 한 숟가락을 덜어낸 양으로 퉁쳤다. 나물 반찬도 평소에 먹던 걸 그대로 먹었다. 문제는 닭가슴살 샐러드였다. 닭가슴살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내 식탐은 꽤 강했기에 소고기 등심이든 닭가슴살이든 똑같이 맛있는 고기였으니까. 문제는 '양파 브로콜리 파프리카 소스'가 대체 무슨 소스인지를 영 모르겠다는 점이었다. 인터넷을 찾아볼까 생각도 했지만 요리에 취미가 있지는 않았기에 그냥 소스 없이 곁들여 먹는 걸로 대신했다.

그렇게 점심까지 먹고 세 시간이 지났다. 저녁을 먹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신기하게도 배가 안 고팠다! 아, 이래서 세 시간 정도의 시간 간격을 둔 건가 싶었다. 사실 두 번째 식사의 양이 결코 많다고는 할 수 없었기에 나중에 배가 고프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하던 참이었기에 내심 안도했다. 개인적으로는 스크램블 에그보다 계란찜을 좋아하기에 스크램블만 계란찜으로 바꾼 것 빼고는 역시 식단대로 먹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닭가슴살과 브로콜리.

첫 하루를 식단대로 지켰을 때 들었던 생각은 '할만한데?' 였다. 난 식탐이 꽤 강했는데, 그 식탐이란 게 라면을 먹든, 그냥 나물 밥을 먹든 아무튼 뭔가를 먹으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그런 식탐이었다. 때문에 라면 등에 대한 욕구만 조금 참으면 의외로 메뉴들이 먹을 만 했다. 개인적으로 이 역시 엄청난 행운이라 생각한다. 아무튼 내일도 식단을 지켜야 했기에 곧바로 주변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마트에는 꽤나 다양한 음식들이 있었다. 사과와 고구마는 당시 집에 풍족했으니 필요한 것은 견과류와 닭가슴살이었는데, 운 좋게도 닭가슴살은 4개들이 600g짜리 세트가 팔리고 있었다. 한 조각에 150g, 반 조각에 75g이어서 중량을 맞추기 쉬웠기 때문에 이게 왠 횡재냐 하면서 장바구니에 담았던 기억이 난다. 견과류는 호두, 잣, 아몬드 등등 대략 다섯 가지 가량의 견과류 500g이 3만원 남짓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튼 그렇게 한번에 일 주일치씩의 닭가슴살과 견과류를 사서 식단대로 먹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식단만큼 첫 PT날도 구체적인 기억이 남아 있다. 그날, 신발 한 켤레와 인바디 결과지를 들고 헬스장에 들어섰다. 그런데 이럴 수가, 헬스장에서 준비해 둔 바지가 내게 너무 작은 것이 아닌가. 때문에 난 집에서 입고 온 운동복 바지를 그대로 입고 운동해야 했다.

관장님은 우선 헬스장 자전거를 타도록 했다. 약 10분에서 20분 가량, 최대한 열심히 돌리라는 주문이 곧 따라왔다. 그 말대로, 난 열심히 페달을 돌리고 또 돌렸다. 자전거 위에는 헬스 잡지들이 놓여 있었는데, 대략 2004년에서 2007년 정도의 옛날 잡지였다. 그래도 읽는 재미는 쏠쏠했다. 수많은 트레이너의 조언과 운동 팁이 가득했는데 이들은 나중에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되었다. 헬스장에는 그런 잡지가 대략 30권 가량 있었는데 첫 두 달 동안 그 잡지들은 좋은 심심풀이거리가 되어 주었다. 아무튼 그저 자전거에 올라타서 페달을 밟았을 뿐인데 20분이 지나자 몸 전체가 땀범벅이 되었다. 겨울이었는데도!

이후 기다란 봉으로 준비운동을 하고, 본격적인 운동에 들어갔다. 아직 체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해서였는지 첫 운동은 그다지 어렵진 않았다. 스쿼트 자세를 배운 뒤 빈 봉으로 스쿼트를 하고, 또 간단한 하체 운동과 복근 운동을 했다. 한 운동을 다섯 세트씩 하는게 꽤 힘들었다. 특히 세 번째와 네 번째 세트.

본 운동이 모두 끝난 후에는 정리운동을 하고, 러닝머신을 걸었다. 게임 중계 체널을 보면서 시속 4km로 걷고 있다가 너무 느리다는 지적을 받고 4.5km/h로 올렸다. 그렇게 40분을 걷고 운동이 모두 끝났다.

그렇게 두 시간여 동안 첫 PT를 받고 돌아왔을 때는 딱히 힘들다는 느낌이 없었다. 물론 다음 날이 되는 순간 전신이 쑤시기 시작했지만. 아무튼 그렇게 식단과 운동 양 쪽을 철저하게 지키며 본격적인 다이어트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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